세월호 1000인 토론, 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치료’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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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안산올림픽기념관에서는 ‘4·16 희망과 길찾기 안산시민 1000인 원탁토론’이 진행됐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안산지역 84개 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4·16 희망과 길찾기 안산시민 1000인 원탁토론 추진위원회’가 주최단체였는데, 전교조에서부터 자유총연맹까지 그야말로 안산의 거의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했습니다.

코리아스픽스는 이번 토론회의 기획과 진행을 맡았는데, 기획 단계부터 참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토론 참가자, 이해관계자와 아젠다의 폭은 매우 넓은 반면, 기초적인 여건은 거의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해야 하는 토론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자체가 워낙 국가적인 참사였던데다, 외부적으로는 진상조사위 구성 등을 놓고 여전히 정치권의 논쟁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주최단체인 추진위에도 여러 성향의 단체들이 망라되어 있는데다 안산시와 시의회도 참여하는 등 이해관계자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하지만 토론회 당사자인 안산시민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조사도 이전까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는 등 기초적인 자료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코리아스픽스는 수 차례에 걸친 내부 및 주최 측과의 토론을 거쳐 이번 원탁토론을 ‘지역탄력회복성에 대한 한국에서의 첫 토론’으로 규정한 후, 토론회 당일의 주제와 아젠다 등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안산시민들에 대한 사전조사 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4.16 이후 무엇이 가장 힘듭니까’와 ‘4.16 이후 우리는 무엇을 우선 해야합니까’라는 두 개의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토론 당일인 7일, 첫 번째 토론인 ‘4.16참사 이후 가장 힘든 점’에 대한 입론 과정에서 ‘무기력감, 불안감, 국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 등 심리적 영향이 35%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토론참가자들의 80%에 가까운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 심리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매우 많이'(38.7%), ‘많이'(40.2%))

그런데 토론 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상호토론을 진행한 후 투표에서는 ‘무기력감, 불안감, 분노 등 심리적 문제’는 5%로 줄어들고, 입론과정에서 20%였던 ‘미흡한 진상규명’은 40%로 높아졌고 ‘국가와 정치권, 언론에 대한 불신’이 31%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같은 결과는 참사 이후의 현실에 무기력감과 불안감 등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던 시민들에게 토론 과정이 일종의 ‘심리 치료’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됩니다. 그간 다른 시민들과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의견과 감정을 교류하지 못해서 생긴 무기력감과 불안감이 숙의형 토론과정을 통해서 상당히 해소되면서 그 결과가 진상규명 등 정치권을 향한 요구 등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코리아스픽스가 주목하는 것은, 투표결과의 변화보다는 숙의가 시민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시민들 사이의 소통구조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코리아스픽스가 진행하는 원탁토론은, 대규모참사로 빚어진 집단트라우마를 치료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 눈 앞에서 펼쳐진 것입니다.

숙의는 단순히 의견을 모으는 과정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숙의의 과정은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고 통합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게 하는 역할까지 해낼 수 있습니다.